수년전..
차일봉에서의 15분.
지금 그 기억을 떠 올리자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특히 대형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요즈음에.
사고의 순간은 정말 순간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때 : 제 1회 전남 도지사배(98년인가? 년도는 기억이 삼삼)
장소: 지리산 차일봉
전남 도지사배.
많은 준비를 했다. 우리팀이야 도움을 주는 도우미 수준에 그쳤지만,
적어도 전남의 모든 패러인들이 성심성의껏 준비한 행사였다.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차일봉 이륙장.
국립공원 내에 이륙장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일부는 덩쿨에 걸리는 산줄을 걷어내며,
이런데서 게임을 한다며,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경기는 셋타임 40분에 정밀착륙.
기상이 좋아서리 선수들이 줄기차게 나간다.
이륙장 전면 상공뿐만 아니라 능선 훨씬 앞에서도 상승이 좋아,
하늘이 온통 패러글라이더로 가득하다.
간혹 초보자들이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글라이더를 건다.
저거 다 걷으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다.
우리팀 선수들이 거의 나가고 나도 이륙했다.
물론 바리오 시간을 셋트해 놓고.
역시 기상이 좋다.
셋타임의 관건은 우선 고도 올리기.
일단은 올려놓고 나서 시간 계산은 나중에 한다.
이륙하자 마자 약간의 상승에 무조건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올렸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족히 1600은 올렸을 것이다.
10여분 만에 고도를 올리고 나서, 착륙장으로 향한다.
가는 시간 7, 8분 걸릴 것이고,
가서 개기다가 시간봐서 착륙하면 될 것이다.
경기에 나가서 이렇게 탱자탱자 해본것은 정말 드물다.
기분이 좋다.
일등은 내것이다.
분명히 내것이다.
자신감이 빵빵하다.
저 아래, 고도 못잡고 헤메이는 중생들이 간간이 보인다.
착륙장에 도달해서도 고도가 빵빵하다.
개긴다.
왔다리 갔다리..
혹시 침하지역에 들어갈까봐 침하지역은 얼른 통과한다.
다른 선수들이 착륙하는 것을 눈이 빠지도록 뚫어지게 살피면서
계속 개겼다.
얼마나 앞에서부터 착륙장에 진입하는지,,
얼마만큼의 고도에서 착륙장에 진입하는지,,,
44분. 고도 1100.
시간이 되었다.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뿔싸!!
꼬이기 시작했다.
상승력이 너무 강해 고도가 떨어지질 않는다.
윙오버를 심하게 시작했다.
고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 카운터를 주시한다.
38분. 고도 아마 300.
다시 윙오버.
시간이 자꾸 간다.
39분에 착륙장 40미터 쯤에서 일단 정지.
착륙진입을 시도 했다.
8자를 시작하며 시간을 본다.
10초 전. 충분하다.
시간 정말 잘 맞췄다.
목표는 타겟.
착륙장 전방 30미터 쯤에서, 천천히 진입한다.
그러나 고도가 뚝뚝 떨어진다.
너무 낮게 진입했다.
순식간에 착륙하고 만다.
타겟은 저만치 멀리 있다.
시간은 40분01초.
시간 잘 맞추면 뭐해! 타겟에 들어가지 못한걸.
아깝다.
정말 아깝다.
이래서 또 입상한번 못해 보는 구나...
회원들이 모여 아쉬움을 나눈다.
다들 서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아쉬운 마음에 의기투합하여, 멋지게 비행 한번 하자며,
다시 이륙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캔맥주 하나를 땃다.
벌컥벌컥!
시원하다.
배고픔이 가신다.
그러나,,, 그 맥주 한병이 나를 위기로 몰고 갈줄은 정말 몰랐다.
차를 타고 이륙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배고픔에 마신 맥주가
점점 배속에서 출렁대며, 속을 메스껍게 했다.
그러나 비행 후 피곤한 상태라 차멀미려니 하고 다시
이륙장에 올랐고,,,
다시 이륙했다.
멋진 비행을 꿈꾸며,
타겟에 들어가지 못한건 잊어버리고 비행이나 멋지게 한판 때리자.
아직도 상공 기상상태가 아주 좋다.
이륙하자 마자 또 올렸다.
오늘 여기서 최고 고도를 한번 잡아보자.
몇번의 회전끝에 1400정도를 올랐다.
도중에 속이 메스꺼워 더이상 비행을 할수 없을것 같아
착륙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능선을 따라 우리 회원들이 착륙장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드디어 착륙장 상공.
거의 모든 회원들이 착륙을 마치고 있었으나,
아직도 내 고도는 1000을 넘고 있었다.
속도 메스껍고, 빨리 착륙하고자 하는 생각에
윙오버를 시도하며 고도를 낮췄다.
기체의 흔들림이 심해 질수록 속이 부글부글,
이러다가 비행 중에 오바이트 하게 생겼다.
이게 어지러운 건지, 느끼한건지,, 좌우간 죽을 맛이다.
이륙장 상공 50미터.
착륙진입.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도 침하 없이 착륙장 상공을
지나쳐 제자리로 돌아왔다.
더 이상 속이 메스꺼워 비행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빨리 착륙하자고 하는 욕심에,
다시 고도를 내리기 위하여 윙오버에 들어갔다.
오른쪽 한번, 이어 왼쪽.
왼쪽 브레이크를 당기는 순간,
일순. 왼쪽이 절반정도 접혔다.
반대편 견제. 그러나 회복되지 않은 채 한바뀌를 돈다.
이어 기체가 앞쪽으로 엄청나게 쏟아진다.
엄청난 속도다...
심하게 두번 펌핑했다.
기체가 펴지는 것을 두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왼쪽 앞으로 쏟아지며 땅이 눈앞에 들어온다.
너무 가깝다. 그것도 묘(무덤)다...기분나쁘게..
앞으로 넘어지며 지상과 출돌했다.
글라이더가 나를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무언가 가물가물 들려오는 소리..
이름이 뭐에요??
이름..??
주..영...길
파란 하늘이 보인다... 잉! 내가 무언가에 실려 가고 있다.
낯선 119 구급대 아저씨들이 계속하여 묻는다.
어디살아요??
가물가물...
어디살아요??
여...수
일으켜 세워서는 팔,다리를 만져보고
몸 상태를 진단하더니,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나무 그늘에 옮겨놓고
119 구급대는 철수 했다.
15분간 정신을 잃은 것이다.
(착륙장에서 보니,, 50미터 쯤의 고도에서 네가티브인지 스핀인지
그 비슷하게 글라이더가 찌그러지며 추락했단다.
119가 달려오고 회원들이 달려오고,,,
헬멧은 끈이 떨어지면서 머리에서 벗겨져 저만치 뒹굴고 있었고,
나는 인사불성이었단다.)
글라이더가 지상과 충돌한 지점은 묘지였다.
다행히 비석을 비껴나가 지상에 충돌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또한 충돌 직전에 글라이더가 펴 졌기 망정이지,
만약! 펴지지 않았다면?...
끔찍하다.
지금에야 이렇게 객관적으로 비행일지랍시고 적고 있다지만,
그당시에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단 몇초.
단 몇초동안 조작 실수로 나는 지상에 추락하였고,
15분간 사경(?)을 헤멘 것이다.
간혹 망마산에서 비행시 막걸리 한잔 먹고 비행하곤 한 적이 있었지만,
음주비행으로 큰 일 당할 뻔한 그 이후로,
비행전에 술은 절대 안하게 되었다.
또한 착륙장 상공에서 급조작 습관도 자연스레 고치게 되었다.
으이~ 화상!
꼭 이렇게 큰일을 당하고 나서야,, 배우게 되다니..
내 인생에서 그때 15분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지금껏 안전하게 비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소중한 15분 덕에 나는 더욱더 비행을 조심하게 되었으니까.
이왕이면
아까운 15분 잃어버리지 않고 배웠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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