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다듬음 고대의 유물을 해석할 때는 당시 사람들의 관념의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러한 고려없이 유물 유적을 제대로
해석하기란 어렵다.
우리 고대사에 등장하는 소위 ' 삼족오三足烏'
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 삼족오란 고구려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하나의 문화코드에 해당하는데 이
코드를 풀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안목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삼족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까마귀'와 그리고 `세 개의 발'로 핵심요소를 구분해 본다.
까마귀는 알타이 지방과 바빌론, 유럽, 지나, 일본 그리고 성경에까지 등장하며 세계 각지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유명한
`노아의 방주' 에서의 노아도 홍수가 진정 국면에 이르렀을 때,지상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맨 처음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까마귀의 제일의 특징은 온 몸이 `검다'는 것이다. 우리 고대어에서 `검', `감', `곰'은 `크다',
`높다',`신성하다'의 뜻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많고 많은 날 짐승 중에서 고대 신화에 까마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에서 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백제에 유달리 `곰' 즉 `웅熊'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도 같은 연원을 갖고 있다. 하늘과 또 하늘의 권위를 위임받은
왕과 왕의 신분을 상징하는 신성神性 등으로 어의가 확대 전이된 예라 하겠다.
또 `새 = 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보면 까마귀는 곧 `신성한 해',`태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동서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까마귀 중에 발이 3개 달린 까마귀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삼족오 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태양을 상징하는 까마귀의 다리를 3개로 표현한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의 3한三韓 즉 진한 . 마한 . 변한의 3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
고구려에 이르러서는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삼족오의 의미는 흔히 천부인天符印 3개로
일컬어지는 고유의 경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경전 가운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에는
"집일함삼 執一含三"
회삼귀일 會三歸一 "
이라 하여
" 하나를 잡으면 그 속에 셋을 포함하고 있고
그 셋은 다시 하나로 돌아온다"는
동양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는 시공을 초월한 보이지 않는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며,
`셋'은 현상계의 삼라만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셋은
천( 天: 圓 .無極 . 本) .
지(地 : 方 . 反極 . 體) .
인(人 : 角 . 太極 . 用)
을 의미하는 3신일체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삼태극三太極 문양도 이러한 고유의 철학적 이념을 표면
문양으로 기호화한 것이다.
이것은 곧
삼족오와 삼태극 문양은 동일하게 천부인 3개의
핵심적인 내용인 `집일함삼 회삼귀일'이라는 오묘한 철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태극은 무극- 태극 -삼태극으로 변한 것으로 곧 천 . 지 . 인의 완벽한 조화와 화합을 상징한 것이다.
삼태극은 추상적 개념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살아 있는 생물에게 그 의미를 부여 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구려 고분
각저총의 삼족오이다.
또한 지나에서 말하는 동이 9이 즉 동이 9겨레 중에는 북방을 의미하는 현이玄夷가 있고, 또 새를 의미하는
조이鳥夷도 있는데 이는 동일한 뜻이며 태양을 상징하는 현조玄鳥 즉 삼족오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은나라의 시조가 현조가 떨어뜨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난생설화는 곧 은나라의 뿌리가 동이족에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혁거세와 수로왕, 주몽, 부여왕은 모두 알에서 태어난 난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결국 알을 상징하는 태양에
삼족오를 그려 놓은 것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태어난 천자天子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였다.
이러한 삼재설三才說의 수 관념이 조선시대 후기로 들어오면서 주술적 기복과 결합된 후 삼족오는 머리 셋에 다리가 하나인
삼두매가 되어 삼재三災를 막는 그림인 부적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민족의 시조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3의 의미를 간과해 왔다. 그러나 민족 신화에
3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음은 곧 우리 민족의 형성기부터 3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설화에도 이러한 사실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곧 삼위태백, 천부인 3개, 무리 3,000명, 풍백. 운사.
우사, 360여 가지 일, 3.7일 간의 금기 등이 모조리 3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것은 곧 환인. 환웅. 단군의 `3대代'로 이루어지는 `삼신'의 체계가 고대 신화의 원형을 이루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조宣祖의 목릉穆陵에 있는 주작은 3개의 머리 외에 다리도 3개로 되어 있다. 앞의 삼두매와 같이
상징이 암시하는 바가 바뀐 것이다.
이것은 선조 임금 때는 임진왜란을 겪은 어수선한 시대였으므로 3월 3짇날과 같은 배가 된 삼신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선조의 목릉에 `머리 3개, 다리 3개'의 주작도가 새겨진 이유다.
고대의 유적. 유물 중에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인류의 역사가 바로 정령신앙animism에서 무속신앙sharmanism으로 이어져 오늘의 문명과 종교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작도는 머지 않은 조선시대의 유물이었다. 고대 미술사는 가시권 내의 외부 형태만 가지고 단순하게 판단할 가벼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심미학의 차원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2001년 6월
<<한배달>>에 게재된 필자의 글 재 인용.
<<중국사전사화>>에 봉황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봉황은 곧 신조神鳥로 앞 모습은 기린이고, 뒷 모습은 사슴이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용의 무늬,
거북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부리를 가지고 있다. 5색이 찬란한데, 거룩한 하늘의 아들聖天子이 출현한다는 동방의 군자의
나라에서 출현한다.
봉황이 하늘의 아들이 있는 동방의 군자 나라에서 출현한다는 것은, 곧 동이족
임금의 상징물이 봉황임을 뜻한다.
하신 저 <<신의 기원>>에 봉황의 변천사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봉황의 형상이 뒤에 오면서 까마귀 등으로 변했다.
여기서 까마귀란 보통 까마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세 발 달린 까마귀 곧 삼족오三足烏를 일컫는 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의 머리 부분 형상이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 졸저 <<한민족, 그 위대한 시원의 역사 한단고기>>에서 발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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