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스케이트/로드일지

바이퍼 100Km 마라톤 후기_해보지 않은 자 후회한다

구름위를 걷다 2007. 4. 4. 22:17

 

2003년 11월 30일.
날이 밝았다.

100Km 마라톤이 열리는 오창 과학단지.
아침 날씨는 구름이 가득 낀채로 음침하기까지 하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도로 곳곳이 젖어 있다.





집결지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보와 스트레칭에 여념이 없다.
미리 한바뀌 돌아보면서
코스를 답사했는데,
젖어있는 도로.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흙..
오르막에 맞바람..
온몸을 던져 달리리라 맘먹은 대회인데 벌써 불안해 진다.
완주나 할수 있으려나 하는.






이번대회.. 100Km..
올해 마지막 대회다.
어쩌면, 앞으로 인라인 마라톤 대회를 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참가비 갖다 바치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 실력을 어느정도 알았고..
평범한 로드로도 충분히 내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들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일년에 한두번만, 확인을 위해 나가기로 맘 먹은지라..
올 한해 열심히 인라인과 함께 했던 날들의 결산 일지도 모른다.
몇번의 마라톤..
시내로드..
단독로드..
서울 한강변 로드..
트랙대회..
하나포스 국토종단까지..
쉼없이 달려온 일년.
무엇을 위해 이렇듯 달리나? 하는 끝없는 질문 속에서
내가 얻은 답은 무엇이었을까?

국토종단 때 만난 여러 반가운 식구들 만나
인사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얻는다.




목표시간 3시간 40분!
일반 마라톤과 비교하여 20킬로를 40분에 5바뀌 돌면 200분..
후반에 지쳐 늦어질 예상 시간 20분..
총 220분.. 3시간 40분.
목표시간에 들어 올수 있을런지..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그동안 마라톤에서는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선두팩을 쫓아 갔는데,
오늘은 아예 처음 출발부터 뒷줄에서 시작했다.
괜히 오버하다가 완주마저 못할까봐.





5바뀌 까지는 괜찮을 정도의 속도가 나오더니..
그 이후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오르막 맞바람이 생각보다 심하고..
마의 업힐 코스는 점점 더 힘들어 진다.
마의 업힐 코스에서는 힘든 선수들을 꼬실려는지..
물배급.. 배번체크하는 도우미 충북선수들.. 거기다 바나나까지!!
마치.. 이 업힐을 올라와야만..
물이며,, 바나나 준다는 듯이.. ㅡㅡ;;





열심히 달린다.
팩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쪽 저쪽 팩을 옮겨 다니며 달리기를 40여분..
선두팩도 아니고 2진팩도 아닌.. 몇번째 팩인지 모르는 유령팩이지만,,
그래도 서로 격려해가며 분위기 좋게 달린다.





본부앞을 지나 직선주로를 달리는데
뒷쪽이 갑자기 시끄러워 지더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선두팩!!

바람소리..
베어링소리..
서로 격려하는 응원소리.. 비켜 달라는 소리.. 칼부림 소리..
금새 도로가 중원으로 변한다.
웅성거리듯, 시장통 같은 혼잡한 시간이 금새 지나고..
한무더기 선두팩은 유유이 멀어져 간다.

순간 맥이 탁 풀린다.

벌써 한바뀌(3.3Km)를 잡히다니..
나와 함께 팩을 만들어 달리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다들 힘이 쭉 빠진다 한다.

그러나 다시 마음 잡아먹자고 서로 격려하며 달린다.





10바뀌가 넘어서자
다리 근육에 이상이 땡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근육은 조금 괜찮은 듯 한데,
장시간 달리자면, 부츠와 부츠끈이 늘어날 것 같아 꽉 조여선지..
부츠끈이 발목 앞부분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팩은 다들 어디 갔는지..
먼저 갔는지.. 뒤에 쳐졌는지..
지치기 시작하니..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다.

이제 대여섯명 만이 서로를 격려하며 달린다.
동막팀과 인연이 많으려는지..
동막팀 동생 둘과..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팀의 두어선수..함께.





벌써 코스 군데군데..
쥐가 났는지 주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저꼴은 나지 말아야 할텐데..

15바뀌쯤 되어서
한번 쉬잔다.
마침 발목도 너무 아프고 해서 쉬면서 바나나며 물을 잔뜩 먹고..
부츠끈을 다시 느슨하게 했다.
아!! 바나나 겁나 맛있다..
(난 전생에 원숭이 였나 보다!!~)





쉬는 시간도 아깝다..
쉬는 5분여 만에 선두가 또 한바뀌 앞지른다.
벌써 3바뀌 추월 당했다.

다시 심기 일전.. 4명의 외로운 팩이 힘들게 달린다.
한바뀌.. 한바뀌..
20바뀌가 되었을때..
출발선 카운터는 25바뀌..
선두는 벌써 25바뀌를 해치운 모양이다.





한바뀌를 천천이 돌면서 쉬고..
다음 바뀌를 조금 빠르게 돌았다..
그러나 이내 한바뀌를 마치고 한사람이 쥐나 나고 말았다.
할수 없이 다시 휴식.
다리 맛사지를 얼렁 해주고..
왔던길을 되돌아 가 길 곁에 버려진 바나나 두개를 집어 들고와
나누어 먹었다.
아까 달릴 때 눈여겨 봐 놨거든..꿀맛..(역시 원숭이였나봐!!~)

앗!! 또..
휴식의 달콤함을 즐길 사이도 없이..
또 한바뀌 추월 당한다.
이제 선두팩도 나누어 졌는지..
7~8명만이 달리고 있다.
언제나 선두는 존스벤스..
아직도 그들은 증기기관차의 피스톤처럼
푸슁에 변함이 없는듯 힘차게 밀고 나가고 있다.
선두에 섞인 우리 종단팀원들 홧팅!! 외쳐주고..


서둘러 다시 출발..
힘들다.. 업힐!!~
그나마 이정도 업힐이기 다행이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아마 죽어 나가는 사람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와!!~~ 선두들!! 완전 변강쇠다~~ 헤이~ 변강쇠들 화이팅!!'

힘든 업힐의 와중에도 아직 입은 지치지 않았는지..
선두팩을 응원하는 갸륵한 나..
인라인을 말로 탈수 있다면,, 벌써 33바뀌 다 돌았을텐데.. ㅡㅡ;;
임재호감독이 그 말을 듣고는 한마디 한다..

'진짜 변강쇠는 그대들 입니다..'

한바뀌 한바뀌 힘든 시간이 계속된다.

왜 내가 이짓을 하고자 했는지..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절대로.. 다시는 이런짓 안하리라 맹세를 한다.





어느순간..
계측기에 나타난 숫자는 32.
아!~ 선두는 한바뀌 남았나 보다..
내가 얼마나 뒤졌는지도 모르겠다.
쉼없이 내가 돈 횟수를 헤아려 보지만,,
잘 모르겠다.
본부석 앞을 지날때마다.. 동막 응원팀이 불러주는 카운터 소리.
카운터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

이내 함께한 동생이 또 쥐가 났단다.
먼저 가란다.
갈등..
놓고가야하나.. 함께 쉬어야 하나..

이제 선두그룹이 골인.
그러나 나에겐 아직도 9바뀌 정도가 남았다.
갈길은 먼데..

결국 혼자 가는길을 택했다.
(의리없는 넘..)






이제 혼자 달리는 길이라 더더욱 외롭다.
간혹은 힘들어 눈을 감고 달리기도 하고..
힘들어 헐떡대는 자신을 위로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업힐은 이제 걸어서도 올라가기도 힘들 지경이다.
업힐의 중간에서 계수를 하는 어린 충북의 선수들이 응원을 해준다.

'나 자신을 이기자!!'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없다!!'

정말이지.. 그냥 달렸다.
그냥 달렸다.
힘든 업힐이 끝나면,, 기다릴 다운힐을 생각하며..
쉬어야 할 다운힐에서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릎을 부여잡고 푸슁을 한다.




몇바뀌를 돌았다. 그러나
이젠 정말 몇바뀌 돌았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다 돌았을텐데..

선두가 끝난 시간이 3시간쯤..
9바뀌에서부터 계속 내리 한시간 이상을 돌았으니..
거의 다 돌았을텐데..
아무리 늦어도 충분히 돌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 정지하여 응원팀에 물어보니..
정확하진 않지만, 다 돌았단다.
한바뀌를 더 돌았는지..
한바뀌를 덜 돌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지친 후반이래지만, 아무리 못해도 한시간 이상을 돌았으니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레이스를 접었다.





손목의 카운터가.. 4시간 10분을 보이고 있다.

보통 마라톤 끝나면,
아직도 힘이 남아서 우리팀 마중나가고.. 그러는데,
이번엔 레이스를 마치자마자 스케이트 부터 벗었다.
시원한 공기를 맞은 발가락들이 마치 환호 하듯 스스로 꼼지락거린다.
막상 주저 앉고 보니..
왠지 모르게 몰려드는 공허함.
또한편에서 밀려드는 뿌듯함.
그러나 알길이 없다..
왜 100Km를 죽자살자 달렸는지..

이렇게,
나의 100Km 도전기는 끝났다.

비록 예상 시간을 훌쩍 넘어 버렸지만..
다시 또 100Km 마라톤을 하고싶지는 않지만,
해보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만은
확실하다.